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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를 거쳐 로마에 들어온 커피를 당시의 가톨릭 교도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8세에게 금지령을 내려줄 것을 촉구하였으나 커피의 맛을 본 교황은 오히려 커피를 축성하고 가톨릭 교도의 음료라고 공인하였습니다. 이로인해 유럽에서 커피는 더욱 빠르게 퍼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바다에 인접한 지리적 여건의 이탈리아의 베니스는 1720년 플로리오노 프란세스코니(Floriono Francesconi)에 카페 플로리안이 열리게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산마르코 광장에 역사적으로 현존하는 유명한 카페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커피하우스는 곧 로마, 피렌체, 밀라노 등 다른 도시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파리보다 항구도시였던 마르세이유에 먼저 도입되었던 커피는 터키 대사인 솔리만 아가가 파리로 부임하며 커피를 들여와 파리 사교계에 커피의 유행을 가져왔고, 그 후 프로코피오 콜텔리에 의해 공식적인 파리 최초의 커피하우스인 카페 프로코프가 코미디 프랑세즈 극장 근처에 만들어져 작가, 배우, 음악가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의 커피 문화는 오스만트루크족이 퇴각하면서 놓고 간 커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콜쉬츠키는 전쟁 중에 투르크족으로 위장하고 전령으로 활동하다가 전쟁 후에 버려진 커피 자루들을 발견하여 1683년 비엔나에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열었습니다. 그는 터키식 커피가 아닌 여과식 커피를 도입했다고 알려졌으며 커피에 꿀과 우유를 첨가하여 아랍식 커피에서 유럽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커피를 개발하였다고도 합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다양한 분야와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페니 유니버시티(Penny University)라고도 불렸으며 이는 적은 돈으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런던의 로이드 커피하우스는 나중에 세계 유수의 로이드 보험회사가 었는데, 당시 선원들과 무역상들이 모여 들어 배의 선적 리스트, 행해 일정, 보험 상담 등을 서로 알려 주면서 커피하스가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관습은 팁(Tip)인데, 팁은 커피하우스나 주점에서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하여 손님들이 동전을 주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독일도 다른 유럽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 커피가 도입되고 영국인들에 의해 커피하우스가 생겼습니다. 그 후 베를린 등 남부와 북부 독일에 커피가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고가인 커피 가격으로 인여 서민들이 마음대로 커피를 즐길 수 없어 불평이 나타나게 되고 당시 국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대왕은 맥주 소비를 권장하고 커피소비를 제한할 것을 권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1676년 보스턴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나타났습니다. 커피, 차와 맥주가 같이 팔리는 커피하우스 겸 주점의 역할을 하였는데, 차에 무거운 세금을 물리게 한 영국 정부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유명한 역사적 사건인 보스턴 티파티(Boston Tea Party) 사건으로 차의 음용은 위축되었으며 커피는 더욱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습니다.

 

 

 

 

 '커피'는 영문식 표기 coffee를 용한 외래어입니다. 커피가 한국에 처음 알려질 당시에는 영문표기를 가차여 가배라고 하거나, 빛과 맛이 탕약과 같이 검고 다고 하여 서양에서 들어온 탕이라는 뜻으로 양탕국 등으로 불렸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커피가 들어온 시기는 1890년 전후로 알려져 있습니다. 1888년 인천에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과 슈트워트호텔이 생겼고 그 안에 다방이 들어선 것이 최초의 커피를 파는 곳으로 추정되지만, 1895년 발간된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커피가 1890년경 중국을 통하여 들어왔다고 기록되었고, 또한 1892년 구제국들과 수호약이 체결되면서 외국사신들이 궁중에 드나들며 궁중과 친밀했던 알렌이나 왕비 전속 여의였던 호튼 등이 궁중에 전했을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최초의 공식문헌상의 기록으로는 1895년 을미사변으로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을 때 러시아 공사 웨베르가 커피를 권했다고 전해져 옵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즐기게 된 고종황제는 환궁 후에도 덕수궁에 정관헌이라는 로마네스크식 회랑건축물(한국최초의 양식건물)을 지어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무렵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추천으로 고종의 커피 시중을 들던 독일계 러시아 여인 손탁은 옛 이화여고 본관이 들어서 있던 서울 중구 정동 29번지의 왕실 소유 따땅 184평을 하사받아 곳에 2층 양옥을 짓고 손탁호텔이라 명칭하였습니다. 이 손탁호텔에 커피하우스(다방)가 있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커피하우스라 할 수 있습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군의 주둔이 시작되며 군용식량에 포함되어 있던 인스턴트커피는 우리나라 커피 문화 발전의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스턴트커피의 대중화를 가져오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다방의 급격한 증가였습니다. 과거 일제시대의 지식인 계층이 주로 출입하며 정와 사를 논하던 장소에서 일반 시민, 대학생 등의 주요 약속장소가 되었고 제공되는 커피는 대부분 미군부대에서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그 후 커피의 합법적인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외화 낭비를 막기 위하여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인 인스턴트커피의 생산을 허가하게 됩니다. 1970년대 초 동서식품은 미국회사와 손을 잡고 맥스웰하우스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커피를 생산하였으며 1970년대 후반까지 한국 커피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며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 후 1976년 커피믹스의 개발, 1978년 자판기의 등장 등은 한국사회에서 커피의 폭발적인 대중화를 가져옵니다. 1980년대부터는 커피를 마시는 대중의 취향이 점차 고급화 되었고 원두커피 전문점이 등장하였는데, 압구정동의 '쟈뎅'이 시초였습니다. 그 후 '도토루', '시트커피' 등 카페 형태의 커피전문점이 다방을 대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커피애호가들은 인스턴트커피에서 원두커피로 선호도가 옮겨가게 되면서 원두의 품질이 중요한 커피 소비의 기준이 되었고, 1999년 스타벅스의 출현을 계기로 커피전문점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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